1월23일. 에픽 음원이 아마 풀린 날이었지? 음원이 풀린 날, 부랴부랴 음악을 다운받아서(합!법!적!으!루!) 엠피에 가득 채워서.... 침대에 누웠다. 되게 간지러운 표현이고 웃긴거 아는데, 아마 나 울었을껄. 음악으로 인한 감격? 뭐 그딴거 때문에. 내가 음악듣고 처음 울어본건 토이3집을 들었을 때, 그때였을꺼다. 와 세상은 살만하다. 에픽이 내 인생의 진로를 거진 반 정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 remember, 인가 첫방. 내가 처음 힙합, 이라는 음악을 처음 들었던 무대였다. 그 떄는 나는 멜로디도 없고 그냥 주절주절 소리만 풀어 놓는 요상한, 음악들이 생소하고 싫었다. 지오디 씨디를 다 소장하고 있는데....ㅡ.,.ㅡ... 노래 들을때 브릿지부분만 빨리감기 하면서 들었던 기억두 나네. 암튼 그렇게 처음 들어본 힙합, 음악에 충격을 받아서 에픽 까페에도 가입하고 노래도 알음알음 찾아서 들어봤다. 어떻게 보면, 에픽은 내 인생에 있어서 '계기'라는 것을 만들어 준 가수다. 우선 음악적으로 내가 힙덕후가 되는데 일조ㅡ.,ㅡ를 해줬으며,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시각을 알려줬다. 에픽노래를 들으면서 에픽엘범에 들어있는 목소리들을 하나둘씩 알아갔다. 우선 뭅먼 가수들은 기본이고 힙합이면 죄다 다 듣는 시절이 있었다. 그 땐, 완전 힙덕후 그 자체. 힙합 음악 아니면 듣지 않았던 주류 음악들은 다 깔보고 무시했더랬지. 뭐 지금은 음악이면 다 좋다. 음악에 장르가 어딨나? 좋으면 다죠. 푸헹헹헹헹.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하이 소사이어티를 열심히 시청하면서 아 사회는 이렇구나... 라는 것도 알게되었다.
Remapping the Human soul
4집, 음악과 대중성을 다 사로잡은 무서운 에픽하이. 트리플 크라운에서 이 음반에 대한 리뷰를 오늘에서야 꼼꼼히 정독했다. 에픽, 영원히 당신의 서포터즈가 되겠어요. 영혼과 감성을 공명하게 하는, 당신들. 고마워요.
이건 내 영혼의 지주, 타블로의 특별한 시도. 이터널 모닝에 대한 가슴떨리는 리뷰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Eternal morning이라고 명명된 앨범을 플래이어에 걸었다. 첫 곡부터 낯설다. 타블로나 에픽하이라는 이름으로부터 넘겨 받은 이미지가 적절히 자리잡을만한 공간이 없다. 읊조리는 여성의 나레이션과 이정식의 색소폰이 어반 사운드(Urban sound)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소리들은 힙합이라는 장르로 불리우지만 대중 취향의 팝 사운드를 담고 있던 에픽하이의 음악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건 도대체 뭘까? 타블로라는 익숙한 이름을 크레딧에 포함하면서도 인트로부터 청자의 기대를 능숙하게 배신해버린 이 음반의 정체는? 그리고 타블로의 의도는?'
에픽하이는 주류(mainstream) 그룹이다. 결과론적인 분석이 될지 모르겠지만, 에픽하이라는 그룹의 음악이 상업성이라는 명확한 목적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자, 그들의 인기와 음원의 판매가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타블로는 그 주류 그룹의 일원이다.
그러나 에픽하이로부터 떨어져 나온 개인으로서의 타블로는 전혀 다른 지향점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었다. 어반 뮤직,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적 분류, 그리고 류이치 사카모토 류라는 근사치 스타일의 설명이 [Eternal morning]의 사전적 정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뜻은 기존의 에픽하이와는, 그리고 그룹의 브레인으로서의 타블로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음악이 앨범에 담겨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존 그룹 활동의 노선과는 다르게 대중적이지 않은 비주류 장르를 선택하고 있으며, 보컬 없는 score는 상업성의 결정적 요소마저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인기 절정의 그룹 멤버에게 이런 과도한(!) 실험을 감행하도록 한 것일까?'
대중 가요계는 샘플링과 자기 복제로 자생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오리지널리티의 순수성은 힘든 길을 찾아가는 멍청한 일로 취급되고, 무한 반복되는 자기 노래 배끼기는 1집과 2집의 변별력을 소멸시켜 앨범을 구입하는 소비자를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시류의 우울함 속에서 우연히 듣게 된 Eternal morning의 음반은 타블로라는 에픽하이의 한 멤버가 뮤지션으로 진화해가는 과정을 발견한 반가움을 전해준다. 음악적 변화의 시도는 그가 뮤지션으로의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있다는 것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변화의 폭이 에픽하이라는 소속팀의 아우라에 기대 안정적으로 기존 팬들을 끌어안고 가는 마이너 변형의 형태가 아닌, 전폭적이고 낙차 큰 커브의 모양새를 가지고 있기에 더욱 반갑다. 모험적인만큼 자기 음악에 대한 갈증이 컸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테며 그 모험을 앨범이라는 완성형으로 내놓음으로써 자기 실현의 의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샘플링이나 자기 복제의 틀을 깬 익숙하지 않음과, 그 안에 더욱 익숙하지 않은 음악들을 담아 놓고 있는 것에 타블로의 변화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이다.
장르의 이동이나 특정 스타일의 집착이 진화 운운하는 평가를 이끌어 내는 것은 아니다. 타블로의 변신을 진화라는 단어로 연결시키는 것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가 대중적 지지 기반을 지닌 팝 스타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부연하면 그가 이미 상업적 성공으로 음악계 활동 목적의 절반은 획득한 수혜자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수혜의 반대편 꼭지점에서 다시 써나가는 음악은 그가 아직 스스로 음악적 불만을 해소하지 못했음을 뜻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을 찾기 시작하며 평범했던 가수(singer)는 뮤지션(musician)으로 성장한다. 그렇기에 또 하나의 상업적 성공이 아닌,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으로의 무모한(!) 시도에 '뮤지션으로의 진화'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뮤지션이란 말 그대로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해 음악에 집착하는 사람을 뜻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주류의 뮤지션이 비주류의 음악을 선택한 진지하고도 깊은 고민의 지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할 수 있는 시장여건이나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기에 '할 수 없다'는 누군가의 변명이 얼마나 궁색한 것인가에 대한 확인과 함께 말이다. 의지가 있다면, 음악에의 열정이 있다면, 다른 무엇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타블로의 변신은 멋지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변신을 감행할 만큼 자신들이 택한 음악이란 분야에 애정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가수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말이다.
타블로와의 잠시 스치듯 지나친 만남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앨범을 들어보고 블로그에 글을 써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그는 앨범을 건네며 내가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이라 기대했을까?
어쩌면 스스럼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기다린다는 것에서 그의 진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ps. GD, 제 2의 누구라는 수식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지만... 나는 당신이 제2의 타블로가 되길 간절히 빌어요. 타블로의 음악적 마인드와, 천재성(은 이미 갖추고 있지만)을 공유할 수 있는 당신이 되길. 이 리뷰를 꼭 한번 읽어보길 바라며....